일독을 권합니다, 그 시작에 서서
사회혁신 지식을 편집하는 사람으로서 누리는 특혜이자 동시에 짊어져야 하는 고충은 ‘읽기’가 직업적 일상이라는 점입니다. 쇼츠와 릴스에 익숙해진 저 역시 묵직하고 깊이 있는 지식을 차분히 읽어내는 일이 점점 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읽기를 이어가야 하는 이 직무가 오히려 얼마나 큰 복인지 실감합니다. 일상에서 읽기가 휘발되는 시대에, 업무 때문에라도 읽기를 멀리할 수 없다는 것은 큰 행운이기 때문입니다.
편집 과정에서 전 세계 다양한 국적의 저자들이 쓴 글을 읽다 보면, 짜릿한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가보지 못한 나라의 누군가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할 때, 오래 붙잡고 있던 고민의 실마리를 발견할 때, 흐릿하게만 감지하던 사회 문제를 명료하게 인식하게 될 때 제 사고에 불이 켜지는 듯한 경험을 합니다.
읽기의 특별함은 바로 이 ‘수고로움’에 있습니다. 손가락만 움직이면 자극적인 영상을 쉽게 볼 수 있는 시대지만, 산만한 정신을 활자에 고정해 저자의 논지를 따라가고 나의 경험과 지식을 반추하는 과정은 고단합니다. 그러나 이 수고로운 읽기야말로 ‘지식을 통해 나를 읽어내는 과정’이라 믿습니다. 내가 요즘 어떤 고민을 했는지, 무엇을 시도하고 싶은지, 어떤 문제를 이해하고 해결하고 싶은지 읽기를 통해 발견하게 됩니다.
앞으로 <더나은미래> 지면을 통해 제게 ‘정신의 불을 켜준’ 아티클을 한 편씩 소개하려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일상에도 ‘지식을 읽고, 지식이 나를 읽어주는 경험’이 더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일독을 권합니다.
SSIR 한국어판 편집장
서현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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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들의 퇴근길
[추천 아티클] 휴식과 즐거움 그리고 신뢰
길고 무더웠던 올여름, 제 마음에 깊이 남은 장면이 있습니다. 어둑해진 바닷가 둑방길을 따라 줄지어 집으로 돌아오는 페어리 펭귄들의 모습입니다. 호주로 떠난 여름 휴가에서 마주한 이 장면은 제게 강한 울림을 주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펭귄 종인 페어리 펭귄은 귀여운 외양으로도 시선을 빼앗지만, 그들의 생태에는 더 특별한 것이 있었습니다.
호주의 필립 아일랜드는 물고기 사냥을 마치고 돌아오는 페어리 펭귄을 관람할 수 있는 생태 관광으로 유명합니다. 저 역시 자연 속의 펭귄을 보고 싶은 마음에 이 관광을 선택했지요. 페어리 펭귄들은 낮에 바다에서 물고기 사냥을 하고, 해질 무렵이 되면 자기 둥지로 돌아옵니다. 특이한 점은 사냥은 홀로 하지만, 귀가는 무리지어 한다는 것인데 이 집단적 귀가 방식을 ‘펭귄 퍼레이드’라고 부릅니다. 둑방 위에서 이 퍼레이드를 지켜보는 것이 관광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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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로 쉼과 안전을 책임지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펭귄들이 열마리 정도씩 무리를 지어 집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뒤에 처지는 펭귄이 있으면 앞서 가던 펭귄이 기다려주기도 하고, 집을 찾는 걸 도와주기도 하고, 왈라비의 공격을 서로 함께 맞서며 펭귄들은 집단적으로 퇴근하고 있었습니다. 펭귄들의 집단적 퇴근에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서로를 포식자들로부터 보호하고, 누구도 집으로 가는 길을 잃어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죠. 처음에는 작고 귀여운 모습에 마음이 홀렸지만, 펭귄들의 퍼레이드를 계속 바라보고 있다보니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서로의 안전한 귀가와 쉼을 책임져 주는 펭귄들의 공동체가 우리가 잃어가는 것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도 쉼은 필수입니다. 쉼을 통해 활력을 회복하고, 삶의 균형을 찾으며, 창조성을 되살립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제대로 된 쉼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경제적 여유, 나의 빈자리를 채워줄 동료와 조직, 휴식을 존중하는 사회적 문화와 제도가 뒷받침돼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쉼은 공동체가 서로를 돌볼 때 비로소 모두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그렇기에 휴식에서 누군가가 소외될 수 있음을 이해하고, 이들을 기억하고, 찾아내고, 책임지려는 공동체적 인식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쉼은 소수의 특권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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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은 변화를 불러온다
30여 년간 비영리단체의 리더들의 안식년을 지원해 온 미국의 더피재단의 케리 에이버리는 ‘휴식은 변화를 불러온다’고 말합니다. 그는 휴식 지원을 ‘꽃을 피울 씨앗을 심는 일’로 비유하며, 개인의 번아웃을 막을 뿐 아니라 돌봄이 사회적 책무임을 일깨운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지치고 고갈된 상태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에 전념할 수 없다고 말하며, 사회변화를 위해 애쓰는 이들의 휴식을 함께 책임지는 일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SSIR에 2024년 발간된 아티클 '휴식과 즐거움 그리고 신뢰'에는 오랫동안 휴식을 지원해 온 더피재단과 새터버그 재단의 철학과 인사이트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아티클에서 저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휴식을 지원받은 비영리단체에서 리더십 전환과 승계가 건강하게 준비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국 쉼을 지원한다는 것은 개인과 조직의 현재를 지탱하는 일일 뿐 아니라, 우리가 바라는 사회 변화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미래에 대한 투자이기도 합니다.
무덥고 길었던 2025년의 여름, 여러분께 좋은 쉼이 있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잠시 멈춰, 우리 공동체의 모든 이들이 쉼과 휴식에서 소외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함께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더 따뜻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꿈꾸며,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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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 SSIR Korea 센터
성동구 왕십리로 222 HIT 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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