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남은 자리에서
여러분은 상반기를 돌아봤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으신가요?
저에게는 지난 임팩트써밋에서 임팩트금융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어요. 투자를 하는 사람과 투자를 받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라서 인상 깊었지만, 그보다 더 기억에 남은 것은 '한국에서의 임팩트 투자'는 무엇이어야 하는지, 자본은 어떤 방식으로 사회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두고 서로 다른 경험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질문을 붙잡고 치열하게 대화를 이어가던 모습이었어요.
자본은 정말 사회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사회를 바꾸는 자본은 어떤 형태여야 할까? 행사가 끝난 뒤에도 그 질문은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SSIR Korea 2026-1호 〈자본은 어떻게 사회변화를 만드는가?〉는 그 질문들을 담아 만들었습니다. '임팩트 투자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케빈 스타의 글부터, 그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는 아티클까지 — 이번 호는 하나의 답을 제시하기보다, 서로 다른 관점을 마주하며 독자 여러분이 직접 질문을 붙잡아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구성했어요.
이번 호를 통해 책 속 담론을 넘어, 여러분의 하반기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한 장면이 만들어지길 바라요.
SSIR 한국어판 콘텐츠 매니저
이예슬 드림
|
|
|
Editor’s Note
임팩트 투자를 다시 묻다
강창모 SSIR 한국어판 센터장
임팩트 투자는 이제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기업과 투자자, 재단과 비영리조직, 공공기관과 개인 기부자에 이르기까지 많은 주체들이 ‘임팩트’라는 언어로 자신의 활동을 설명한다. 그러나 임팩트라는 말이 널리 쓰일수록 그 의미는 오히려 흐려지고, 때로는 단어가 품고 있는 중요한 맥락을 놓치게 된다. 좋은 의도를 가진 투자라면 모두 임팩트 투자인가. ESG를 고려하는 투자는 곧 임팩트 투자라고 볼 수 있는가. 임팩트를 더 다양한 방식으로 측정하면서 우리는 정말 더 많이 이해하게 되는가. 더 많은 자본이 투입되면 자연히 더 큰 변화로 이어지는가.
SSIR 한국어판 2026년 1호는 이러한 질문들에서 출발해 임팩트 투자를 다시 들여다본다. 이번 호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한 것은 임팩트 투자의 정의,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이다. 임팩트 투자는 단순히 선의를 자본에 덧입히는 일이 아니다. 의도한 변화를 분명히 하고, 그 변화가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는지 이해하며, 자본과 데이터, 조직과 제도, 기부자·투자자와 수혜자 사이의 관계를 그 목적에 맞게 재설계하는 과정이다.
이번 호의 네 가지 축은 결국 임팩트 투자를 더 넓은 사회혁신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임팩트 투자는 좋은 일을 하면서 수익도 낼 수 있느냐는 질문에만 머무르지 말고, 더 근본적인 질문들을 생각하며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어떤 변화를 의도하고 있는가. 그 변화는 누구의 삶에서, 어떤 맥락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가. 우리는 그 변화를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조정하며, 어떻게 더 넓은 생태계로 확산할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본과 데이터, 조직과 제도, 기부자와 시민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임팩트 투자는 완성된 답이 아니라 계속 진화하는 실천이다. 이번 호가 임팩트 투자를 둘러싼 익숙한 언어를 넘어, 더 엄밀하고 더 실용적이며 더 책임 있는 논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
|
가끔은 AI에 던진 평범한 질문이 패러디 같은 답변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얼마 전 나는 클로드에게 ‘임팩트 투자’의 최신 정의를 물었고, 이런 답이 돌아왔다.
“2024년에는 임팩트 투자의 정의를 단순히 투자자의 의도에 근거해 판단할 것인지, 아니면 실제 사회 변화를 만들어냈는지와 해당 자본이 그 변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는지, 즉 자본의 추가성이 있는지까지 기준에 포함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역시나 논의의 결론은 임팩트 투자의 정의를 투자자의 의도성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실제 사회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시장 수준의 수익률보다 낮은 수익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임팩트 투자를 둘러싼 기대와 열기가 뜨거웠던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다. 그 시절에는 임팩트 투자가 ‘인내 자본’과 ‘양허적 금융’을 이야기하고, 심지어 임팩트에 대한 책임까지 추구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의도성’뿐이다.
그리고 때로는 그 의도성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임팩트 투자라고 부를 만한 자본 자체의 규모가 계속 줄어드는 현실을 목격했을 것이다. 임팩트 투자 실무자들은 점점 줄어들고, 투자되는 자금도 계속 감소하고 있다. 반면 이들은 갈수록 까다롭고 부담스러운 실사를 통해 위험을 줄이려 든다. 대형 원조가 급격히 축소되는 상황에서 시장 기반의 해법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런데 하필 지금, 임팩트 투자가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다.
다행히도 나는 임팩트 투자가 안겨준 수많은 실망을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다. 바로 임팩트 투자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
|
|
공공의 실패 비용을 떠안는 일이 자선은 아니다
PIERRE R. BERASTAÍN
케빈 스타의 임팩트 투자 비판은 투자 자본과 실제 성과를 명확하게 연결하기 어려운 현장에서 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하다. 추가성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선한 의도는 보여 주기 식 행위에 그칠 수밖에 없다. 시장수익률을 추구하는 자본은 ‘위험이 실제로 존재하고, 수익 여력은 제한적이며, 사람들의 삶과 직결된’ 곳으로는 좀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수익성·유동성·위험성 측면의 희생 없이도 깊은 사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가정은 소셜 임팩트 생태계의 중간 지대를 약화시켰다. 그 결과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복잡한 사회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회혁신가들은 필란트로피스트에게는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투자자에게는 지나치게 위험하게 여겨지며 두 영역 사이에서 표류하게 되었다. 애매한 표현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양허적 자본을 있는 그대로, 즉 필란트로피라고 부르는 일은 도덕적 명확성과 실행의 규율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케빈 스타의 지적은 옳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사회적 임팩트의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며, 그로 인해 발생한 수익이 실제로 어디에 귀속되는지에 대해 일정한 가정을 전제하고 있다. 즉 투자자가 시장 수준의 재무적 수익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 활동을 필란트로피로 분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임팩트 분야에서는 우리의 활동이 공공 비용을 절감하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다른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떤 개입은 투자자가 그 성과를 직접 회수할 수 없더라도 경제적으로 충분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수익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이 투자자에게 돌아가지 않을 뿐이다.
|
|
|
SSIR 한국어판을 정기구독으로 만나보세요
아래 링크를 통해 매거진 정기구독을 신청하시면 SSIR 한국어판 매거진을 무료로 정기 발송해 드립니다. 이번에 발간되는 매거진부터 정기간행물로 SSIR의 깊이 있는 사회혁신 지식을 만나보세요. |
|
|
한양 SSIR Korea 센터
성동구 왕십리로 222 HIT 513-1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