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에 실린 아티클 ‘정신 건강 위기의 시대, 대학의 문화를 바꾸다’에는 대학생 아들을 잃은 한 부모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도나와 필의 아들 제드는 애리조나 대학교 2학년이던 1998년,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고 굳게 믿었던 도나와 필은 제드의 죽음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고, 청년 자살 문제에 눈을 뜨게 된다. 제드의 정신적 위기를 대학 친구들과 교수들은 이미 감지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개입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도나와 필 부부는 제드의 죽음이 막을 수 있는 비극이었음을 깨닫는다.
청년 정신건강을 지원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비영리조직 제드 재단(JED Foundation)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유능하고 부유한 백인 부부에게 닥친 예기치 못한 비극은 안정적인 삶에 균열을 일으켰고, 그 균열 사이로 낯선 열망이 들어왔다. 도나와 필은 대학에 자살 예방 프레임워크를 체계적으로 전파하는 일에 전념했다. 공군의 정신건강 예방법을 대학의 실정에 맞게 소개하고, MTV를 통해 자살 예방 캠페인을 벌였으며, 학교가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포괄적으로 증진시키고 있는지 점검하는 인증 시스템을 만들었다. 결국 아들을 떠나보낸 상처가 ‘미국의 대학을 자살을 예방하는 강력한 공동체로 만들겠다’는 새로운 비전을 그려내는 동력이 된 것이다.
새로운 미래의 씨앗은 균열 속에서, 고통의 터널을 지나며 잉태된다. 순탄한 성공이나 안정적인 관계는 변화보다 현상 유지를 선호하기에 새롭게 창조해낼 힘을 만들지 못하기 마련이다. 탄탄한 방법론을 적용하고, 막대한 자원을 투입한다고 혁신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존의 문제들은 복잡한 이해관계와 쉽게 변화시키기 어려운 정교한 절차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대한 사회구조와 문화를 거슬러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회의 중력을 거스를 만한 충격과 자각이 필요한데, 이 과정은 종종 균열과 상처로부터 시작된다.
‘공립학교, 민주주의를 다시 세울 수 있을까?’의 두 필자는 미국 공교육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극도의 혼란상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도 미국이 교육을 다시 근본적으로 회복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극우주의가 득세하는 정치, 성과주의와 경쟁의 폐해가 새로운 교육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신호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우리가 진정 시작해야 할 일은 교육의 근본 목적을 재정의하는 것임을 상기시켜준다. 산업화에 최적화된 개인을 길러내는 수단으로서의 교육을 넘어, 시민성을 함양하고, 민주주의를 구현하며, 작동하게 만드는 공공재로서 교육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비전을 제시한다. 교육이란 무엇인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난제는 무엇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학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묻는 일은 미국 공교육만의 과제가 아니다. 의대 교육을 둘러싼 극도의 갈등, 심화되는 사교육 의존, 사상 최대의 청소년 자살률 등 우리 교육 현장의 문제들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가진 패러다임을 점검하고, 어떤 가치를 기반으로 새로운 비전을 그려야 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번 호에는 다채로운 교육 혁신의 사례들이 담겨있다. 재소자, 장애인, 여성청소년, 지역 청년 창업가, 예술가 등 다양한 주체들이 등장하고, 나이지리아, 영국, 말라위, 미국, 뉴질랜드, 중국, 아랍에미리트, 한국 등 광범위한 지역의 사례가 다뤄진다. 이러한 다양성은 새로운 변화가 어느 한 지역, 특정 주체로부터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기에 무척이나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 다양한 사례가 희망적인 가장 큰 이유는 중대한 변화가 상처와 결핍, 균열로부터 시작됨을 증거해주기 때문이다. 혼란과 갈등 속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그려낼 수 있는 역량이 만들어지고, 고통과 상실 속에서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할 이유가 생긴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상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더 나은 미래를 구현하겠다는 열망은 누구로부터 발현되는가? 안전지대를 벗어나 가보지 않은 길을 기꺼이 가게 만드는 용기는 언제 시작되는가?
새로운 상상, 이전에 그려본 적 없는 빅픽처는 균열과 상처로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