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씽킹 교육으로 출장을 가는 KTX 안에서 SSIR 표지의 ‘디자인씽킹, 문제해결에 실패하다’라는 단호한 선언에 살짝 마음이 상했습니다. 반항심 반, 호기심 반으로 단숨에 읽고 보니 단순 비난의 글은 아니었고, 의외로 읽다 보니 디자인씽킹의 가치에 대한 존중과 제가 현장에서 느꼈던 한계를 절묘하게 잘 짚어낸 글이었습니다. ‘디자인씽킹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독자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필자들의 주장에 충분히 동의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디자인씽킹의 한계라고 지적한 학습용이성, 탈맥락화, 단기적인 속성에는 부분적으로 동의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동전의 양면처럼 그런 점들이 극강의 장점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이처럼 제 현장 경험을 기준으로 아티클에 동의하는 부분과 동의하지 않는 부분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디자인씽킹이 단순한 도구라는 것이 문제일까? 그것은 특장점이다
특히 올해 여러 로컬(제주, 안산, 전주, 경주, 청도, 밀양 등)에서 디자인씽킹 교육을 진행했고, 요청은 더 많은 지역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어째서 로컬에서 다시 디자인씽킹이 유행할까요?’라며 반짝이는 눈동자로 질문하시는 지역활동가께 “디자인씽킹이 (1) 누구나 금방 배울 수 있는 높은 접근성을 가졌고 (2) 문제해결 당사자를 참여시키며 (3) 모두가 주목하도록 문제를 가시화시킨다는 세 가지 장점을 지녔기 때문 아닐까요?”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은 “그럼 정말로 디자인씽킹으로 지역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십니다. 저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자유형을 배우면, 한강을 건널 수 있을까? 접영, 배영까지 배우면, 도버 해협을 건널 수 있을까?' 저의 대답은 “어떤 가능성이 열리겠죠” 였습니다.
디자인씽킹은 안전하게 수영에 입문하도록 도와주는 자유형 같습니다. 특정 문제에 대해 안전하게 실험하도록 공감(Empathize), 문제정의(Define), 새로운 접근(Idea), 실체화(Prototype), 적용(Test)으로 구분된 다섯 가지 동작을 제공하죠. 그렇다고 방법 자체가 어떤 로컬문제든지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누가 사용하는가’라는 주체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간과한 발상입니다. 이처럼 디자인씽킹은 가능성과 한계가 모두 분명한 혁신의 도구입니다.
맹목적 도구로 소비되던 디자인씽킹에 ‘비판적 사고’의 눈을 달아보자
제가 로컬이나 소셜섹터에서 디자인씽킹을 교육할 때면 왠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기업에서 디자인씽킹을 통해 ‘고객에게 환영받고, 잘 팔리는 신제품’을 개발했습니다. 매출액이 올라가는 성과를 통해 디자인씽킹의 존재가치가 인정되었습니다. 그런데 소셜섹터나 로컬문제 해결에 있어 그렇게 맹목적으로 단기 목표를 달성하는 도구는 도리어 더 큰 해악을 발생시킨다는 것이 자명합니다. 저뿐 아니라 이미 많은 사람이 그런 고민을 갖고 디자인씽킹을 개조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K12 lab의 Equity-Centered Design Framework에 주목했습니다. 디자인씽킹의 권력 편향성과 맹목성을 보완하기 위해 알아차림(Notice)과 성찰(Reflect)을 프로세스에 포함시켰다는 구체적 대안이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디자인씽킹 프로젝트팀을 대상으로 알아차림(Notice)으로 시작해 공감(Empathize), 문제정의(Define), 새로운 접근(Idea), 실체화(Prototype), 적용(Test)의 5단계를 거친 후 성찰(Reflect)로 마무리할 때, 팀원들이 목적 달성에서 벗어나 주어진 상황과 잘못된 결정들을 인지하며 비판적 사고를 하게 된다는 것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가치판단이 포함된 디자인씽킹 도구를 사용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디자인씽킹은 오케스트라의 서곡일 뿐, 이어 협주곡은 울려 퍼진다
저는 디자인씽킹이라는 도구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서곡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에서 비롯된 역사적 갈등, 아파르트헤이트는 협력적인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아담 카헤인이라는 퍼실리테이터는 몽플뢰 시나리오 워크숍을 통해 대립하던 흑인 지도자와 백인 지도자, 반란군, 시민들까지 협력과 대화의 장으로 끌어냈습니다. <통합의 리더십>이라는 책에서 그가 제시한 방법은 ‘말하기, 듣기, 새로운 현실 창조하기’ 3단계였습니다. 문제 당사자가 문제에 참여해 말하고, 상대의 생각을 들음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반성하며 바꾸고, 함께 구체적인 미래를 그려내는 것은 방법론의 영역을 넘어, 놀라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함께 존재함’으로서 가능한 역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디자인씽킹에는 접근성을 무기로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더 많은 사람들을 테이블에 앉게 하는 ‘초대장’ 혹은 협주를 시작하는 오케스트라의 ‘서곡’과 같은 역할이 주어져도 꽤 큰 영광일 것 같습니다. 그다음은 타인의 언어를 이해하고, 자신의 생각을 반성하며, 함께 미래를 그려내는 ‘중요한 대화’가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만족하는 것이 아닌, 공동체가 함께 존재하고 관계맺기 위한 음악이어야 합니다. 물론 디자인씽킹을 배우고자 기대를 잔뜩 품고 저를 찾아오신 지역활동가분들께 쉬운 방법론을 가르쳐드려야겠지만, 오늘 디자인씽킹을 통해 맺은 협업의 서곡이 또 다른 관계로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의 협주곡이 되어 지역에 가득 울려 퍼지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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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을 만나 진화하는 디자인씽킹'